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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법 종합/기타 노동법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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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 판단

- 서울고등법원 2019. 12. 20. 선고 2018나2054232 판결 –

 

【 판 결 요 지 】

피고가 원고들에게 매출 목표와 경쟁사 대비 점유율 목표를 제시하고 매출 현황을 파악하거나 매출이 부진한 매장의 분발을 촉구하는 방법으로 목표 달성을 독려한 것은, 피고뿐만 아니라 원고들과도 밀접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이를 곧바로 지휘․감독권의 행사라고 단정할 수 없다. 피고가 원고들에게 경쟁사 브랜드의 매출 현황을 파악하도록 한 것 역시 백화점 매장 퇴출 방지라는 원․피고의 공통된 목적을 위한 협조와 협업으로 볼 수 있다. 원고들이 판매하는 제품의 판매 가격, 할인 판매 대상, 할인 가격의 최종적인 결정을 피고가 하였다 할지라도, 이를 반드시 원고, 피고 간의 종속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원고들이 백화점 개․폐점 시간에 따라 근무하여야 하는 것은 원고가 근무하는 장소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피고가 이를 상시적으로 관리하였다고 볼 객관적 증거는 없다. 원고들이 판매 금액에 연동한 수수료를 지급받고 지출 내역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었던 점 등의 사정은 결국 원고들이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의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 판단

【 판 결 내 용 리 뷰 】

(1) 이 사건은 퇴직금 청구소송으로 원고들이 근로자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는데, 1심은 근로자성을 인정하였으나(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9. 6. 선고, 2017가합526959 판결), 2심인 대상판결은 근로자성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양 판결이 기준으로 삼았던 근로자성 인정법리가 달랐던 것은 아니다. 1심 판결과 대상판결은 동일하게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기준(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이하, 참고판결)을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사실관계, 동일한 법리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달라 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한 탐색을 위해 기초사실과 1․2심 판결의 요지를 먼저 살피기로 한다.

 

이 사건의 기초사실은 다음과 같다. 피고는 의류 및 피혁 제품의 제조 및 판매업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 백화점에 매장을 임차하였다. 피고와 원고들은 ‘판매대행계약서’라는 명칭의 계약서를 작성하였고, 원고들은 계약서의 내용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 계약은 원고들이 피고가 원고별로 지정한 백화점 내 매장에서 피고의 의류 및 피혁 제품을 판매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피고로부터 그 대가로 ‘수수료’를 지급받는 내용이었다. 참고판결이 제시한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따라 1․2심판결이 각 요소별로 설시한 사항을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다.

 

< 대상사건에 관한 1심 및 2심의 근로자성 판단 >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 판단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 판단

(2) 대상판결의 특징이라면 1심판결에 비해 매우 엄격한 형태로, 다르게 표현하자면 고전적 기업의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종속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소별 판단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해보기로 한다.

 

첫째, 대상판결은 1심판결과 같이 업무내용의 결정권한이 피고에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를 피고의 손해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여, 이것 만으로 종속성이 인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라면 업무내용의 결정 권한이 종속성의 표지가 될 수 있는가에 관해 의문이 생긴다. 시장경제 내에서 결정권한 보유자의 이익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업무내용은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정되는 모든 업무내용은 해당 업무가 결정권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전제를 가진다. 업무내용의 결정권한은 이익의 최종 귀속자가 보유하게 되며, 업무내용의 결정권한을 보유한다는 것은 이익의 최종 귀속자가 된다는 의미다. 만일 이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뒤집을 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은 판촉행사에 있어 원고의 의견 제시 등이 가능 하였음을 적시한다. 하지만 업무담당자의 의견을 묻고, 이를 수렴하여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자연스러운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불과하다. 경영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임파워먼트는 조직의 의욕과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 현장의 구성원에게 재량을 위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구성원이 직접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고객 니즈에 신속히 대응하고 현장에서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활용된다. GE와 같은 회사에서는 결정권한을 가장 낮은 현장에 전부 주는 것을 임파워먼트라고 하기도 한다. 따라서 피고의 업무 내용 결정에 원고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근로관계의 종속성을 부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대상판결은 종속성의 표지로서 업무내용의 결정권한을 형해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취업규칙의 적용, 근로계약의 전속성 및 계속성 관련이다. 먼저 취업규칙이 적용된다는 것은 근로자성 인정에 있어 충분조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이는 곧 취업규칙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거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근로자성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취업규칙의 작성 권한 및 적용 범위 획정 권한은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근로계약의 전속성 및 계속성 부분인바, 대상판결이 1심판결과는 다르게 근로계약의 계속성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전속성만을 논하기로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들 중 1인이 다른 매장을 함께 운영한 점을 들어 업무의 전속성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전속성이란 것이 유무로 나눌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대상판결에서와 같이 원고가 해당 매장 밖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전속성은 부정되겠지만, 1심 판결이 설시한 “원고들이 피고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의 의류 및 피혁 제품을 판매할 경우 피고는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음에 초점을 맞춘다면 전속성은 인정될 것이다. 따라서 전속성은 ‘유무’보다는 ‘정도’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참고판결이 종속성의 판단 요소로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밑줄은 필자)라고 설시한 것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셋째, 상당한 지휘․감독 관련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사건의 목표관리를 지휘․감독이 아닌, 대상판결이 설시하듯 원․피고의 공통된 목적을 위한 협조와 협업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가 문제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면, 지휘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단체의 행동을 통솔함”으로, 감독은 “일이나 사람 따위가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살피어 단속함, 또는 일의 전체를 지휘함”으로 정의된다. 또한 협조는 “힘을 합하여 서로 조화를 이룸, 생각이나 이해가 대립되는 쌍방이 평온하게 상호 간의 문제를 협력하여 해결하려 함”으로, 협력은 “힘을 합하여 서로 도움”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뜻 풀이에 기대어본다면 지휘․감독과 협조․협력은 양 당사자의 관계가 수직적이냐, 수평적이냐에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관계가 수직적이냐, 수평적이냐라는 추상적인 질문은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관계의 특징을 대입해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요구에 대해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는가?’가 그 질문이 될 것이다. 만일 관계가 수평적이라면 상대방의 요구에 대한 거절이 자유롭겠지만, 수직적이라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요구 거절시 예상되는 불이익이 존재한다면, 그 불이익에 대응해 조치할 수단이 거의 없거나 모호하여 승낙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면, 이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을 보자면 피고는 원고에 대해 목표관리를 시행하였고, 원고의 목표 달성 및 수행 여부에 따라 계약 해지 혹은 갱신 거절을 결정하였다. 이에 원고가 피고의 목표관리 요구에 대해 거절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피고의 원고에 대한 지휘․감독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근무 시간․장소의 지정 및 구속 관련이다. 대상판결은 먼저 피고가 원고의 의사를 들어 근무 매장을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고의 의사를 확인했다는 것이 피고의 근무 장소 지정 권한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근로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다른 기업에서도 직원의 의견 수렴 혹은 근무 장소 등에 관한 인사상담은 일반화되어 있다. 대상판결이 설시하듯 원고의 근무 시간의 결정에 있어 피고가 제외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1심판결이 인정한 바에 따르면 원고의 업무는 “피고가 지정한 백화점 매장에서 그 백화점의 영업시간 동안 피고의 의류 및 피혁 제품만을 판매”하는 것이었기에, 피고는 원고의 근무 시간을 해당 매장이 속한 백화점의 영업시간으로 특정해 놓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상판결은 피고가 원고의 출근, 퇴근 여부나 근무 여부를 사후적․전체적으로 보고받았을 뿐 이를 관리하였다고 볼 객관적 증거가 없으며, 원고가 행한 휴가계획서의 제출은 정보 제공차원에서 행해진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계약의 해지나 계약기간 만료 후 갱신의 거절이라는 권한이 피고에게 부여되어 있는 한, 근태 관련 보고서 혹은 계획서의 제출은 그 자체만으로도 원고를 구속하게 된다. 즉, 피고가 보고서 및 계획서의 수령 후 원고에게 특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 예정 되어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다섯째,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의 위험 관련이다.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판매 금액에 연동한 수수료를 지급받고 지출 내역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었던 점 등의 사정을 들어, 원고들이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의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판결문에 적시된 사실만으로는, 이윤 창출의 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손실 초래의 위험 부담을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고가 지급받은 금전은 판매 금액에 연동한 수수료여서, 이윤 창출이 줄어들 가능성과는 다르게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의 위험을 모두 부담하는 이는 피고일 뿐이다. 이는 대상판결도 인정하는바, ‘업무의 내용과 수행 방식’ 판단 부분에서 “원고들은 제품의 판매 금액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지급받지만, 피고는 제품의 소유자로 재고 발생이나 마진율에 따른 손해를 최종적으로 부담한다.”고 서술한다.

 

(3) 그렇다면 대상판결은 왜 고전적 기업의 근로관계를 상정하고 종속성을 판단한 것일까? 이 사건의 1심판결에 대한 리뷰는 대상판결의 결론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노동사건에서는 법관의 노동에 대한 인식과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한 재판의 전제조건이 된다.” 대상판결을 내린 법관의 인식이 지금의 노동현실을 못 따라가는 것이다.

 

한편 성질에 관한 판단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특정의 개체 혹은 사건이 복수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며, 때에 따라서는 상반되는 성질을 함께 보유하기도 함을 말한다. ‘종속성’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인가를 종속적이라고 규정짓기(규범화하기) 전까지, 그 무엇인가에는 ‘종속성’과 함께 이에 상반되는 ‘독립성’이 혼재한다. 하지만 종속적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개체 혹은 사건이 가지고 있는 독립성은 법률관계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속성 여부에 관한 신중한 판단을 위해서는 ‘종속적인가?’라는 질문만을 해서는 안 된다. ‘종속적인가?’와 함께 ‘독립적인가?’라는 질문이 함께 행해져야 한다. 둘은 다른 질문이다. 법관 혹은 사건에 대한 해석자는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자신이 가지는 판단의 공백 혹은 중첩을 경험하게 된다. 규범상으로야 종속적이라면 비독립적이며, 독립적이라면 비종속적이 된다. 하지만 개별 사건에 부딪힌 인간의 인식은 이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개별 사건에 관해 ‘종속적인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한 사람이라도, (앞의 질문과 답을 고려치 않는다면, 혹은 질문의 순서를 바꾼다면)‘독립적인가?’라는 질문에도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가 있다. 혹은 양 질문 모두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도 있다. 전자라면 판단의 공백이, 후자라면 판단의 중첩이 발생한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인식의 모순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질문에 대응하여 인식의 틀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종속성 여부의 신중한 판단을 위해서는 이러한 인간 인식의 자연스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판단의 공백 혹은 중첩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인식은 양자의 비교형량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이 비교형량 역시 해석자의 주관에 달렸지만, 적어도 한 가지 질문으로 형성된 틀에서의 결론 보다는 신중해질 수 있다.

양승광(법학박사)

 

※ 출처 : 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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