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라는 ‘노동’
: 영화제작 종사자의 근로자성 판단
- 서울동부지방법원 2018. 10. 4. 선고 2018고단1331 판결 -
- 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9도9688 판결 -
【 판 결 요 지 】
이 사건 스태프들은 매월 고정된 급여 또는 정해진 총액을 지급받았을 뿐 달리 개인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취하지 않은 점, 피고인이 제공한 사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하였고 필요한 자재 등은 피고인이 제공한 점, 프로덕션 기간의 근무지는 촬영계획표에 따라 정해지고 근로자들이 근무장소를 변경할 재량은 없던 점, 피고인과 도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팀장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업무결과 보고를 했던 점, 계약서에서 스태프들의 제3자 대상 용역계약을 금지하고 있어 이 사업장에 대한 전속성이 인정되는 점, 스태프들이 4대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피고인의 비용 절감이 목적이었던 사정 등을 종합하면 이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지,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거나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 개인사업자로 보기 어렵다.
【 판 결 내 용 리 뷰 】
1. 사실관계와 판결요지
대상판결의 피고는 영화 제작사를 운영하는 사용자이다. 피고 회사에서는 총 20명의 영화제작 스태프들이 2016. 12. 26 ~ 2017. 4. 22. 사이 기간에 각각 근무했는데, 피고는 이들에게 퇴직일로부터 14일 내 보수를 지급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이하,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해당 기간 20명의 근로에 대한 체불임금 총액은 4천 6백만 원 가량이었다.
대상판결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 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위에서 말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대법원 2013. 6. 27. 선고 2011다44276 판결 등 참조)는 기본 법리를 인용한 뒤, 다음의 사정들을 종합할 때 피고의 스태프들은 근로자가 맞다고 판단하였다.
① 스태프들은 매월 고정된 급여 또는 정해진 총액을 지급받았을 뿐 달리 개인적 방법으로 수익을 취하지 않은 점, ② 프리 프로덕션 기간 (pre-production, 촬영 시작 전의 준비기간)에는 항상 대략 오전 10시경 피고인이 제공한 사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시작하고, 업무에 필요한 자재를 피고인이 제공했다는 점, ③ 프로덕션 기간(촬영 시작 이후)에는 각 촬영장에 가서 근무하는데, 이 때 각 스태프들의 근무지는 월간 또는 일일 촬영계획표에 따라 정해지고 피해자 스스로 근무 장소를 변경할 수는 없었던 점, ④ 피해자들의 채용, 근로기간, 급여 및 해고 등에 관해서는 각 팀의 팀장들 의견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종국적인 결정은 피고인과의 협의를 거쳐야 했던 점, ⑤ 피해자들은 팀장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결과를 팀장에게 보고했던 점, ⑥ 피해자들과 사업장 사이에 작성된 ‘스태프계약서’에서 계약기간 중에는 제3자에게 용역을 제공하지 말라는 독점 조항이 있어 이 사업장에 대한 전속성이 인정되는 점, ⑦ 피해자들이 4대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으나, 이는 피고인의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이며,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거나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 개인사업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 평 가
대상판결은 영화 제작 스태프들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명확히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화 제작은 그 용어에서 알 수 있듯 (“film production”) 영화라는 종합적 문화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화된 과정이므로 고도의 노동이 요구되고 일반 산업현장과 마찬가지로 고용관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여러 측면에서 노동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첫째, 투자자-제작사-영화감독으로 이어지는 다중의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대상판결처럼 스태프들이 계약을 체결하는 상대방은 대개 제작사이지만 실제 밀착해서 업무를 시키는 것은 영화감독인 경우가 많으므로 문제 발생 시 사용자 책임을 서로 회피하기 쉬운 구조다. 둘째, 제작사와 스태프는 근로계약이 아닌 형식상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예술 분야 특성상 창작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관행이 심했기 때문이다. 셋째, 영화 촬영 시 목표하는 장면이 성공적으로 촬영될 때까지 작업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하는 사정상 스태프들의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해 온 문제도 있었다. 과거에는 ‘영화제작 및 흥행업’이 근로기준법 제59조의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업종 중 하나여서,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만 거치면 주 52시간을 초과하여 일을 시키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었다. 영화계 종사자들의 지나친 장시간 노동이 계속 문제로 지적되자 지난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때 비로소 특례업종에서 삭제된 바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스태프들이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계약 문언 보다 이들의 업무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려 한 노력이 보이는데, 특히 다음의 두 대목이 그렇다. 첫째, 대상판결은 스태프들의 채용, 근로기간, 급여 및 해고 등에 대해 피고인이 아닌 팀장들의 의견이 비중 있게 작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스태프계약이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으로 해석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각 팀별로 주어진 일을 완성하여야 하는 영화제작이라는 업무의 특성상 각 팀장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직원들을 채용하기를 원하여 피고인이 직원 채용에 관하여 많은 권한을 각 팀장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둘째, 스태프들은 피고인으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거나 세부적인 업무 내용을 보고하는 경우는 없었고 주로 팀장의 지시에 따라 일한 뒤 그 결과를 팀장에게 보고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팀장에게 업무 내용에 관해 많은 재량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며 피고인은 팀장을 거쳐 업무보고를 받게 된다는 점을 밝혔다.
대상판결은 피고의 항소 후 2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19. 6. 20. 선고 2018 노1443판결)에서도 원심 내용을 확정했고, 이후 최근 대법원에서도 최종적으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9도9688 판결). 특히 2심 판결에서는 원심 내용을 긍정하면서 스태프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아야 하는 몇 가지 이유를 덧붙여 눈길을 끈다. “피고인은 이 사건 영화 제작 방향을 설정하고 각 부서 제작과정을 총괄하는 권한을 보유했고… 각 부서 책임자를 통해 소속된 스태프들의 업무를 통제할 수 있던 점, 스태프들이 손실의 위험을 부담하지는 않았다는 점, 계약 내용에 따르면 스태프들의 고용 및 해고에 대한 권한을 피고가 보유하고, 스태프들은 구체적 업무 분담과 수행에 관하여 상급자 또는 피고인이 위임한 직책상 상급자의 지시에 따르도록 규정된 점”등을 들었고, 또한 “최근 영화제작자들과 근로자들 사이에는 표준계약서 등을 활용하여 근로기준법 적용을 전제로 고용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바, 이 사건 사업장에서 노무를 제공한 스태프들의 근무 형태가 다른 영화 제작과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는 언급을 하여 영화산업에서 최근 종사자들을 보호하려는 동향을 적극적으로 포착한 점도 고무적이다.
한편, 대상판결과 동일한 제작사에서 일했던 ‘감독급 스태프’(미술감독, 현장편집기사, 촬영감독, 녹음감독 등)도 대상판결 스태프들과 마찬가지로 임금체불로 제작사를 고소한 바 있는데, 최근 이 사안에 대해서도 서울동부지 방법원은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2) 이 판결에서는 감독급 스태프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해 “피고인으로부터 거의 지휘를 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급여는 기간을 정한 총액으로 약정되었지 특정한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므로 도급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했고, 이들이 지휘, 감독을 받지 않은 것은 “업무가 전문적이어서 피고인 등이 개입하는 것이 필요없거나 적절하지 않아서이지 피고인에게 지휘, 감독할 권한이 없어서는 아니고 언제든지 지휘, 감독할 권한이 유보되어 있다.”고 한 점도 주목된다.
최근 법원은 근로자성 판단과 관련하여 입증이 요구되는 지휘․감독의 정도를 다소 완화하고, 업무의 과정만이 아닌 최종 성과가 통제되는 경우에도 사용종속관계를 점차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영화제작 스태프들에 관한 대상판결도 이러한 흐름에 있는 것으로 보여 환영할 만하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촬영 스태프들과 개별적으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 52시간을 준수했던 것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좋은 성과는 누군가의 비정상적으로 힘든 노동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며, 더 이상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이다혜(서울대학교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 서울대 강사)
※ 출처 : 한국노동연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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