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성 판단기준 비판 – 삼성물산 백화점 위탁판매원 사건
- 대법원 2020. 6. 25. 선고 2020다207864 판결 -
【 판 결 요 지 】
사실관계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이하,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1) 원고들이 피고와 체결한 위탁판매계약서에 나타난 근로자성을 긍정 할 수 있는 요소들은 피고에 의해 독립적인 개인사업자인 대리점주에게도 유사하게 시행되었으므로,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사항이라고 볼 수 없다.
2) 피고가 원고들의 근태관리를 하지 않고, 원고들이 판매원으로 하여금 일정 정도 자신을 대체하여 근무하게 할 수 있는 등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종속성 및 전속성의 정도가 약하다.
3) 원고들은 판매실적에 따라 상한 또는 하한이 없는 수수료를 지급받아 판매원의 급여, 일부 매장 운영 비용을 지출하여야 하므로, 일정 정도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고 보아야 하고, 위 수수료를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기 어렵다.
1. 백화점 위탁판매원의 노무제공 모습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 운영업체는 납품업체와 특약매입거래계약 또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여 납품업체가 백화점 내 일정 공간의 매장을 활용하여 판매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납품업체들[이 사건의 경우 삼성물산(상호변경 전 제일모직)]은 해당 매장에서 자신의 브랜드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납품업체들은 이러한 매장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판매업무를 주로 위탁판매계약을 체결한 위탁판매원에게 맡기고 있다. 백화점 내 매장은 백화점 운영업체의 전반적인 관리를 받고 있으므로 이들 위탁판매원의 업무장소, 근무시간은 대체로 백화점 운영업체가 사실상 결정한다는 점에서 각 납품업체별로 위탁계약을 체결한 위탁판매원의 업무행태는 외견상 비슷하다. 아울러 위탁판매원은 소속된 납품업체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브랜드 관리 차원의 매장관리, 재고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제품 판매가격에 대한 결정권한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이 있다.
2. 선행 판결과의 비교
백화점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은 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5다59146, 62456, 63299 판결[발렌타인 사건]에서 이를 인정한 이래 유사 사건이 여러 건 제기된 바 있다. 이 판결도 그러한 사건 중 하나로서 백화점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발렌타인 사건과 결론을 달리하고 있어 주목된다. 발렌타인 사건과의 사실관계상의 차이는 위 판결요지에 언급된 사항 중 2)와 3)에 나타난 사실관계라 할 수 있다. 즉, 근태관리, 타인을 이용한 대체 근무의 허용여부, 수수료의 상하한 유무 등이 그것이다. 이를 정리해 보면 아래표와 같다.
위 사항을 비교해 보면 삼성물산 사건의 경우 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부산학원 사건]에서 제시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는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따르면 근로자성이 부인될 만한 요소가 다수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①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②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③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④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에 관한 사항이다. 대법원은 바로 이 기준들에 비추어 볼 때 삼성물산 소속 위탁판매원들에게는 근로자성을 부인할 요소가 많다고 본 것이다.
3. 다른 결론의 원인-보수에 있어서 성과연동의 정도
그런데 백화점이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비록 취급하는 상품의 브랜드가 다르기는하나유사한노동을제공함에도근로자와자영인이라는극과극의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무엇이 이들의 법적 지위를 극단으로 갈라놓은 것일까. 필자는 위 사건이 발렌타인 사건과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 가장 결정적 이유는 완전 성과연동형과 기본급 유무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대법원이 삼성물산 사건에서 중요한 이유로 제시한 휴일사용의 자율성, 대체근무 허용, 징계권 불행사 등은 따지고 보면 모두 완전 성과연동형 보수체계의 논리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최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가정할 때, 완전 성과연동형 보수체계는 그 대상자가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노동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노무이용자는 노무제공자에게 특별한 지휘나 감독을 할 필요가 없다. 휴가를 사용할지 말지, 타인을 대신 투입할지 말지에 대한 판단도 노무제공자에게 맡겨버린다. 일정한 조직 내 규율을 위반한 경우 징계를 할지 말지 호들갑 떠는 것도 어색하다. 손해를 입었고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면 위탁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노무제공자는 위탁계약을 해지당할까 두렵기도 하거니와 성과저하로 인해 자신의 수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스스로 규율을 잘 지키며 열심히 일하게 된다. 굳이 징계권을 행사할 상황 자체가 잘 마련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저성과자에게는 분배를 덜 하면 되는데 소득감소 그 자체가 노무제공자에게 불이익이라는 점에서 이를 통해 사실상 징계에 갈음할 수도 있다. 나아가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거나, 또 다른 매장을 운영하는 등 노무제공자의 노무이용자에 대한 전속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노무이용자에게 약간의 불편을 줄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직접적인 비용 지출이나 수익 감소가 적다면 용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노무이용자 입장에서는 노무제공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전통적인 노무관리방식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고정급에 의한 분배체계하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전개된다. 일(성과)의 질과 양이 아니라 근로시간에 연동하여 고정적인 보수가 지급되므로 노무이용자는 노무제공자를 지휘․감독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질과 양을 획득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취업규칙 등 내부규율을 확립하고 휴가사용을 통제하며 대체근무는 불허되며, 문제가 발생한 경우 징계처분을 함으로써 노무제공자를 엄히 꾸짖어야 한다. 따라서 고정급의 범위를 축소하고 성과연동형 보수 부분을 확대하면 할수록 지휘․감독은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노무제공자의 자율성을 확대해주는 것이 노무제공자의 자기책임에 비례하여 보수를 지급하는 성과연동형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무제공의 실태는 보수체계와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
대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근로자 판단기준을 살펴보면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를 종속성의 인정 요소로 제시하면서도, 이는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단서를 제시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보수체계가 근로자성 인정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대법원도 인지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지가 실제 재판에서 구체화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휴가 사용을 마음대로 하고, 잘못이 있더라도 징계를 받지 않으며, 대체근로가 가능하다면(즉, 노동의 일신전속성) 그러한 노무제공자는 자영업자로 보아야 한다는 뿌리깊은 통념이 이러한 구체화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4.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서 자영업자와의 유사성 검토의 부적절성
그렇다면 완전 성과연동형 보수체계를 채택하고 계약서에 몇 줄 기재된 지시사항에 터잡아 노무제공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자들 사이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여지는 없는 것일까.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근로자성을 부인하면서 대리점주와의 비교라는 흥미로운 이유를 제시하였다. 즉, “위탁판매계약서에 나타난 근로자성을 긍정할 수 있는 요소들은 피고에 의해 독립적인 개인사업자인 대리점주에게도 유사하게 시행되었다.”는 설시가 그것이다. 이는 자영업자인 대리점주와 비슷하므로 근로자가 아니라는 취지로 읽힌다. 그런데 이 문장 속에는 삼성물산의 대리점주는 ‘독립적인 개인사업자’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이 명제가 과연 확립된 노동법적 결론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는 하나, 이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근로자성 판단을 ‘자영업자와 얼마나 비슷한가’라는 논리로 접근하려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노동법은 대등한 자 사이의 계약이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즉, 계약자유의 원칙으로는 보호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예외로 노동법의 역사는 시작된다. 따라서 노동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근로자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계약자유의 원칙이 그대로 관철되는 자영업자와 유사한가의 관점이 아니라 그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라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업무수행 양태에 있어 대리점주와 이 사건의 위탁판매원이 비슷한가가 아니라 ‘대리점주와 위탁판매원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그러한 차이가 위탁판매원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를 정당화시키는가’라는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대리점주는 점포를 구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등 자기자본을 투하하고, 삼성물산으로부터 물품과 제품판매 노하우, 제품관리 등의 지시를 받는다. 위탁판매원은 이미 삼성물산이 백화점 운영업체와 계약을 통해 확보한 매장에서 업무를 수행한다는 차이가 있다. 위 판결요지 중 3)에서 ‘위탁판매원들이 수수료를 지급받아 판매원의 급여, 일부 매장 운영 비용을 지출’하였다고 하나 이는 삼성물산의 매장 운영방침에 따라 비용부담을 전가한 것일 뿐 이를 자본투하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백화점 매장의 경우가 다년간의 운영경험이 축적되었으므로 로드숍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출액을 예상하기에 용이한바, 삼성물산의 입장에서 백화점 내 매장에서는 일정 수준의 매출을 예상할 수 있고, 그 범위에서 위탁판매원에 대한 보수체계나 비용부담체계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라 보아야 한다. 발렌타인 사건의 경우 일정 수준의 고정급이 위탁판매원에게 보장되었는데, 이 역시 매출액에 대한 예상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혁적으로 백화점판매원은 수십 년 전에는 근로계약을 통해 매장에 투입되다가 20여 년 전부터 위탁판매원으로 전환이 이루어졌고, 이 무렵부터 본격적인 성과연동형 보수체계가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1)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출액에 대한 예상이 정확해지고, 아울러 판매원에게 재량을 부여하는 것이 최적의 매출을 올리는 방법이라는 경영학적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위탁판매원의 보수체계에서 고정급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성과급의 비율이 커졌을 것이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판매원에서 발렌타인 사건의 위탁판매원을 거쳐 다음 단계 모델인 삼성물산 위탁판매원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진화에도 불구하고 백화점판매원의 노무제공 태양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제품을 소매하고 마진을 얻는다는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리점주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대리점주가 알아서 판매활동을 하도록 하던 행태가 시간이 흐르면서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본사의 개입이 점차 늘어나지 않았을까. 이렇게 연혁적, 거시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때, 완전 성과연동형 보수체계에 있는 백화점 위탁판매원은 자영업자이므로 노동법적 보호를 배제하여도 좋다라는 결론이 정당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백화점 내 매장은 납품업체의 자본투자에 의해 공간이 마련되고 관리되는 데 반해 로드숍과 같은 대리점은 대리점주의 본격적인 자본투자에 의지한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손실이 발생하였을 때, 위탁판매원은 수입의 감소라는 불이익을 얻지만 원칙적으로 자본회수의 문제는 겪지는 않는다. 투하한 자본의 회수 문제는 백화점 내 매장의 경우 납품업체가, 대리점의 경우 대리점주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각자가 마주하게 되는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은 위탁판매원과 대리점주에 있어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편, 위탁판매원과 납품업체 본사의 경우에도 그 폭과 깊이가 질적으로 다르며, 위탁판매원이 얻는 이윤의 창출과 손실 초래 등의 위험은 납품업체가 설계한 구도 속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납품업체가 부담하는 영업상 위험(business risk) 중 일부에 불과하다. 위탁판매원이 “일정 정도 자신의 계산으로” 노동을 제기하였다고 하여 달라지지는 않는다. 근로자성 판단기준으로 제시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의 요소는 그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대한 재검토 필요
요컨대, 부산학원 사건에서 제시된 근로자성 판단기준은 변화하는, 엄밀하게는 노무이용자가 주도하는 노동관계의 변화를 따라가기에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필자가 별도의 글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노동 보호에 관한 헌법적 가치를 되새기며 장기적으로 사용종속관계에 터잡은 노동을 재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나,2) 단기적으로는 대법원이 제시한 근로자성 판단기준을 일부라도 재검토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러한 검토의 대상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보수체계에 연동하여 자율성이 인정될 수 있는 요소들이 될 것이다.
이 판결이 선고된 후 또 다른 백화점 위탁판매원 사건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건(대법원 2020. 7. 9. 선고 2020다207833 판결)의 선고가 있었는데, 근로자성이 부인되었다. 백화점에는 지금 루비콘강이 흐르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백화점판매원은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이 강을 모두 건널지 모를 일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김 린(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출처 : 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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