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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법 종합/기타 노동법

단체협약의 협의 사항 해석과 업무방해죄(노동판례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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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협약의 협의 사항 해석과 업무방해죄

- 울산지방법원 2019. 8. 9. 선고 2019고단428 판결 -

 

【 판 결 요지 】

기존에 생산 중인 차종의 증산을 위해 투입비율을 변경할 때 단체협약과는 별도로 노사 간 협의 후 시행해 온 관행이 있더라도, 어느 차종의 차량을 언제 얼마나 생산할지 여부는 경영주체인 회사가 시장의 수요와 재료의 수급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는 고도의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건 단체협약의 진정한 의미는 반드시 노조와 사전에 ‘합의’하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라 조정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수반되는 작업환경개선 및 인원 배치 등에 관하여 필요한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고 그 의견을 성실히 참고하게 함으로써 차량 양산을 위한 공정 등 조정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협의’의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단체협약의 협의 사항 해석과 업무방해죄(노동판례리뷰)

【판 결 내 용 리 뷰 】

피고인은 전국금속노동조합 A자동차지부 B공장 사업부위원회의 대의원이다. 피해자 A회사는 C자동차의 판매 호조와 미국 수출로 인하여 물량 증산이 필요하여 피고인 측 노조에 C자동차의 생산 대수를 늘릴 것을 협의 요청하였다. 피고인 측 노조는 처음에는 협의를 거부하다가, 이후 협의를 받아들인 후 추가 인원 배치를 요구하였고, 이를 수용할 수 없는 A회사는 일방적으로 C자동차의 생산 대수를 증가시켰다.

 

피고인은 A회사의 이러한 조치에 B공장 의장 라인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직원들을 선동하여 이틀에 걸쳐 총 약 998분 동안 생산 라인을 가동하지 못하게 하여 피해 회사로 하여금 고정비 약 16억 원의 손해를 입게 하는 등 위력으로 피해 회사의 자동차 생산 업무를 방해하였다.

이에 지방법원은 피고인에게 업무방해죄를 인정하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피고인 측은 노사 간 합의 없이 생산 대수를 늘린 것은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는 업무이므로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설령 그것이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저항으로서 정당방위 또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지방법원은 먼저 피고인 측의 첫 번째 주장에 대해서 형법상의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되는 업무란 반드시 그 업무가 적법하거나 유효할 필요는 없으므로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업무인지 여부는 그 사무가 사실상 평온하게 이루어져 사회적 활동의 기반이 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고, 그 정도가 사회생활상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는 데까지 이르거나 법적 보호라는 측면에서 그와 동등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에 이르지 아니한 이상,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된다(대법원2015. 4. 23. 선고 2013도9828 판결 등)는 것을 판시하였다.

 

그리고 피고인 측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 지방법원은 본 사건에서는 정당방위 인정의 전제가 되는 피고인 본인 또는 노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없고, 회사의 고도의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 공장의 생산 라인을 멈춘 것은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긴급성이나 보충성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들어 정당행위에 해당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적법한 쟁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생산 라인을 멈춘 것에 대해 ‘현행법’상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며 본 사안의 경우 특별히 정당방위 또는 정당행위로 인정될 요소가 없다는 것에는 인정한다.

 

그러나 지방법원의 판시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지방법원은 본 사건의 업무가 업무방해죄의 보호법익에 속하는 업무라는 점을 논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판시를 한다. 차종의 증산을 위해 투입비율을 변경할 때 단체협약과는 별도로 노사 간의 협의 후 시행해 온 관행이 있었으며, 실제 본 사건 전 해에 ‘차종 간 투입비율 조정 필요 시 사전 통보하여 노사 합의하여 운영한다.’는 세부 운영 합의서를 작성하였다는 점을 사실관계로 인정한다. 그러나 어느 차종의 차량을 언제 얼마나 생산할지 여부는 경영 주체인 회사가 시장의 수요와 재료의 수급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는 고도의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으로 보이는 점, 그리고 신차종 양산에 관한 단체협약을 보면 노조와 ‘사전 협의’하여 결정하되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점을 보면 위 단체협약의 진정한 의미는 반드시 노조와 사전에 ‘합의’하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라 조정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협의’의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다

 

하지만 지방법원이 합의 아닌 협의의 논거로 내세운 ‘고도의 경영상 판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단체협약상의 ‘협의’ 조항을 ‘합의’와 ‘협의’ 중 무엇으로 볼 것인가는 협약 문맥의 의미, 당사자 간의 의사, 그동안의 관행 등을 종합하여 고려할 것이지 단체협약의 사항이 고도의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것이라 합의 아닌 협의 사항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우리 대법원은 2002. 2. 26. 선고 99도5380 판결 이후 종종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공기업의 민영화 등 구조조정의 문제는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도의 경영상 결단’ 또는 ‘경영권’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순수한 의미의 사용자 재량 범위에 속하는 사항이라기보다는 단체교섭의 대상으로서 근로조건 및 노사관계 외의 사항(여집합)을 포섭하는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근로조건이고 사용자의 재량 범위인지는 일도양단할 수 없다. 노동법이 발전해가며 사용자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근로조건으로 변화하였다. 사용자의 재량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사용자와 근로자가 그것에 대하여 협의 또는 합의하기로 하였다면 얼마든지 그것은 근로조건에 준(準)해 취급하여야 한다. 따라서 본 사안의 생산 인력 조정에 관한 사항도 노사가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으면 그 해석에 있어 고도의 경영상 결단이라는 잣대는 사라져야 한다. 또한, 대법원의 논지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의 일관된 판시사항이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영역은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에 국한되어 있는 한 종전 대법원의 판시 사항을 인용함에 있어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양승엽(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 출처 : 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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